[PRODUCT] 지상에서 빚어낸 천체, 백자 달항아리

예술로 불려야 할 이름, 달항아리

우리는 일상의 사물들을 손쉽게 ‘제품(PRODUCT)’이라 부릅니다. 규격화된 공정, 매끄러운 분업형 대량 생산, 그리고 소수점 아래까지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대칭. 하지만 여기, 'PRODUCT'라는 단어의 테두리 안에는 도저히 가두어 둘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 조선 백자의 황금기에 피어난 백자 대호(大壺) — 우리에게는 '달항아리'로 더 잘 알려진 기물입니다.

화가 김환기는 일찍이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그 숭고함을 인정받은 이 항아리를 단순한 소비재나 상업적 제품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그것은 가마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고독한 여정과 본질에 있습니다.


업다지 기법: 상현(上弦)과 하현(下弦)이 이루는 둥근 우주

일반적인 도자기는 하나의 흙 뭉치에서 매끄럽게 형태를 올려내지만, 높이가 40cm를 훌쩍 넘는 대형 달항아리는 그 거대한 무게와 부피 때문에 단번에 빚어낼 수 없습니다. 흙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사기장들이 고안해 낸 신기술은 바로 '업다지 기법'이었습니다. 사기장의 손끝에서 리듬을 타고 올라간 상현과 하현, 즉 아래와 위의 대형 사발 모양 몸통 두 개를 물레 위에서 각각 따로 만듭니다. 그리고 반건조된 두 개의 몸통을 마치 보름달을 맞추듯 위아래로 얹어 하나로 연결합니다.

상하(上下)의 살이 맞닿은 그 경계에 미세한 숨구멍이라도 들면 구워지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터져 버리기 때문에,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여 세밀하게 다듬고 이어붙여야 합니다. 완벽한 수치와 비례를 계산한 기계가 아닌, 인간의 숨결과 호흡이 만들어낸 유기적인 결합이자 고도의 기술적 성취입니다.


천 도의 불길, 삼분의 일만 살아남는 기적

형태를 갖춘 항아리는 자연 건조와 초벌구이를 거친 후, 비로소 도자기의 운명을 결정짓는 재벌 가마 안으로 들어갑니다. 조선 백자 고유의 은은하고 푸르스름한 유백색(乳白色) 피부를 얻기 위해서는 가마 내부의 산소를 완벽히 통제하며 1,300℃에서 1,350℃에 이르는 초고온의 '환원염(Reduction Flame)'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혹독한 불의 시간을 견뎌내고 가마 밖으로 온전히 살아 나오는 완성품은 고작 3분의 1 미만에 불과합니다. 조금이라도 금이 가거나 주저앉은 것, 혹은 사기장의 엄격한 미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은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깨져 차가운 돌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미술관의 조명 아래서 마주하는 단 하나의 달항아리는 수많은 실패와 인고의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존재론적 기적에 가깝습니다.


비대칭의 미학: 무(無)에서 태어난 무한한 아름다움

불길 속에서 흙이 수축하고 녹아내리는 과정을 거치며, 달항아리는 역설적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잃어버립니다. 위아래를 붙여 만들었기에 미세하게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비대칭의 곡선.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일그러짐이야말로 인위적인 완벽함이 결코 줄 수 없는, 조선만의 여유로움과 풍만함이라는 생명력을 뿜어냅니다.

표면에 아무런 문양도 그리지 않은 채 오직 순백의 미 자체로 존재하는 피부는, 비어 있기에 오히려 세상의 모든 빛과 공기를 품어 안는 무한한 포용력을 보여줍니다. 아침의 서늘한 청색에서 낮의 화사한 순백, 그리고 저녁노을의 은은한 미색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항아리는 지상에 내려앉은 달처럼 다채로운 얼굴로 공간을 채워 갑니다.


마치며 : 공간을 침묵하게 만드는 예술품

이것을 어찌 규격화된 소비재이자 대량 생산의 결과물인 'PRODUCT'라 부를 수 있을까요. 달항아리는 지상에서 인간의 숭고한 영혼과 자연의 불이 함께 협연하여 빚어낸 하나의 천체(天體)이자, 공간의 서두르는 공기마저 깊은 침묵과 평온으로 물들이는 위대한 예술품입니다.


ANUKAM이 지향하는 '아늑함'과 '시간이 축적된 가치'는, 어쩌면 이 둥근 항아리가 품고 있는 백색의 아득한 깊이와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작위적인 것들을 비워내어 비로소 가장 나다운 온도로 채워지는 그 넉넉함을 우리 삶의 공간 속에 가만히 들여놓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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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의 콘텐츠는 국가유산채널(@koreanheritage)을 참고해 아늑함(ANUKAM)의 시각으로 큐레이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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